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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정탐 - 비엣남 8. 므엉비 꼬깟마을 탐방

포항맨 2010. 9. 7. 19:47
므엉비 꼬깟마을 탐방
므엉비의 학교를 찾아 어린이 사역을 하기로 하고 차를 대절하여 출발 하였다. 어제 내린 비로 비포장 길이 진흙탕 이었다.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물이 불어서 작은 다리로 건너야 했다. 차한 대가 겨우 건널 수 있는 현수교 다리였다. 위태위태 하게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는데 차가 올라가지 못한다. 모두 내려서 언덕 위 집 앞에 올라가 기다렸다. 휘앤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계속 다리 건널 때부터 기사 아저씨에게 뭐라고 얘기한다. 어떻게든 차를 타고 가야지 자기는 걸어서는 못 간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휘앤을 보니 서울내기라는 말이 생각 났다 이제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옷만 잘 차려 입고 품만 잡으면서 일은 하지 않는 서울서 고향마을에 내려온 깍쟁이를 서울내기 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울내기, 다마네기, 깍쟁이 하고 놀렸다고 한다. 요즘은 공주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틀림없는 서울 내기 짓이다. 자꾸 보니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오른다. 언덕 위 집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시더니 더운데 물 한잔 하고 가라고 하신다. 물 한잔씩 얻어 마시고 집안을 구경시켜 주셔서 둘러 보니 집안 중앙에 큰 제단을 차례 놓고 계셨다. 자랑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허물없이 경개심 없이 대하는 모습이 우리네 어머니와 많이 닮아 보인다. 복음에 대해 들어봤을까 생각이 든다. 주님 이곳에도 주의 복음이 편만 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윽고 차는 올라왔지만 길이 진창이라 더 갈수 없단다. 차가 못 가면 걸어서 가야지 했는데 기사 아저씨 여기 저기 전화 해보더니 어차피 학교에 가도 방학으로 아이들이 없으니 마을로 바로 가 잔다. 목적지를 바꾸어 마을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내려 짐을 들고 몇 사람을 만나 이장님 댁으로 가기로 하고 아이들에게 친구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점점 아이들이 몰려 들고 준비 해간 여러가지 사역 물품으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집주인 내외와 아들들과 할아버지와 모두 오전 일을 마치고 돌아 오셨다. 한창 사역 중에 점심을 해주신단다 닭이나 오리를 잡아 줄까 물어 보시는데 두부등 채소면 충분 하다고 말씀 드렸다.
점심 식사는 이장내외가 준비 해주셨다 반주도 한잔 하자면서 술도 가져오셨다. 처음에는 무슨 차 인줄 알았는데 집에서 담근 과실주 같았다. 이장님은 나와 지혜 샘에게만 자꾸 술을 권 하신다. 은주샘 우리는 안주고 왜 두 사람만 권하는 걸까 지혜 샘이 맘에 들어서 그런다고 농담을 했다. 나는 남자고 지혜 샘은 말이 통하니 친근했던 모양이다. 아이들 옷을 뭉텅이로 집어가신 할머니 한 분이 밥상을 둘러보시더니 잠시 후 큰 양 푼에 죽순을 띠운 뭐라고 해야 하나 맑은 국물에 죽순을 얇게 저민 것을 가져 오셨다. 죽순의 고유한 맛 그대로 인 것 같다 먹을 만 했고 아들을 시켜서 사온 두부는 우리두부와 맛이 똑같았다.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역을 마무리 하면서 마을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기도 하고자 마을을 둘러 봤지만 더운 날씨와 지형을 잘 몰라 어려웠고 아이들과 사람들이 몰려와 기도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한 아주머니는 언덕너머 자기마을 이 더 이쁘다며 꼭 한번 오라고 한다. 할 수 없이 정리하고 마을 에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지난겨울 은주샘이 만났던 아주머니를 만났다 지난번 다시오면 그 아주머니 댁에서 밥을 먹기로 약속했다는데…… 반갑게 인사 하면서도 아쉬워했다. 이야기 중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니 부챗살을 편 것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 속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조금 떨어져서 뒤돌아 보니 마을 전체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 일상에 파무쳐 살 땐 보고자 해도 보지 못했지만 선교지에서 나의 삶을 돌아볼 때 하루 한주 한달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돌아가서 해야 할 것이 무엇 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각자 마을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 하지는 않지만 아쉬움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갈 자리는 있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버리고 복음으로 채워야 하는가 계속해서 기도해야 할 제목이라고 생각하면서 므엉비 꼬깟마을 떠났다.